KISTI의 과학향기
“기하학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유클리드가 말했다.
“왕이시어. 길에는 왕께서 다니시도록 만들어 놓은 왕도가 있지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사실 위에서 말하는 ‘왕도’는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당한 페르시아 제국이 만든 길이다. 이 길이 만들어진 배경을 간단히 알아보자.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기원전 900년경에 아시리아인들의 기병과 전차를 이용한 아시리아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그들이 이 지역을 가혹한 방법으로 지배하자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났다. 그 결과 이 지역은 기원전 610년경에 4개의 나라로 분리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기원전 525년에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통일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이다.
페르시아 제국은 수도를 정치 중심지인 수사, 겨울 궁전인 바빌론, 여름 궁전인 에크바타나의 3개의 도시로 정했다. 그리고 수사와 지중해에 접해있는 소아시아의 사르데스를 잇는 약 2400km의 길을 만들었다. 이 길은 왕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통 사람이 3개월 걸려서 갈 것을 왕의 사자는 이 길을 이용해 1주일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고 하니, 당시에 이 길을 통하는 것이 얼마나 빠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왕의 길’ 즉 ‘왕도’로, 사르데스는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 남쪽에 있는 이즈미르 지역이었으며, 수사는 이라크의 바스라 북쪽 지역이다.
왕도가 만들어졌던 기원전 600년경부터 기원전 300년까지의 시기는 수학의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동안 유클리드는 <원론>이란 책을 통해 기존의 수학을 하나로 통합했으며 무한소, 극한, 합의 과정 등과 관련된 수학적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수학을 이르는 말이었던 기하학은 원과 직선에서 곡선과 곡면을 연구하는 고등기하학으로 발전하게 됐다. 특히 이 시기에는 도형을 작도하는 문제가 한창 유행했다. 작도란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해 도형을 그리는 것이다. 서양에서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하여 작도하는 전통은 플라톤(Platon, BC 427(?) - BC 347)때부터 시작됐다. 플라톤이 작도의 도구로써 자와 컴퍼스만을 고집한 이유는 ‘가장 완전한 도형은 직선과 원이며, 그래서 신은 직선과 원을 중요시 여긴다.’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작도는 고대 이집트에서도 활용됐다. 기원전 3000년경 메네스(Menes) 왕은 상‧하 이집트로 나눠져 있던 이집트를 통일했다. 그 이후에 왕을 ‘큰 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파라오라고 불렀고, 파라오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메네스 왕은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자신이 죽은 후에도 왕을 모시는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피라미드 건설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피라미드의 밑면을 정확하게 정사각형으로 만드는 일이다. 바닥에 그려진 사각형의 어느 한쪽 변의 길이가 다른 한쪽 보다 길거나, 네 귀퉁이의 각 가운데 어느 한 각이 직각을 이루지 않는다면, 밑면은 정사각형이 되지 않아 결국 피라미드를 모두 쌓아 올리면 꼭대기가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오차가 피라미드의 밑에 있는 층에서 발생하면 돌을 위로 쌓을수록 그 오차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건축가들은 매우 정밀한 측량을 하고 정확하게 직각을 그려야 했고, 직각을 그리기 위해 그들이 사용한 방법은 바로 작도다.
이집트인들은 작도의 방법을 이용해 피라미드를 세울 땅에 정확하게 정사각형을 그렸고, 그 위에 차곡차곡 돌 블록을 쌓아 올렸다. 작도를 활용해 건설한 대 피라미드는 피라미드의 동쪽 밑변의 길이가 230.391m, 서쪽 밑변의 길이가 230.357m, 남쪽 밑변의 길이가 230.454m, 북쪽 밑변의 길이가 230.253m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정밀한 측량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의 네 변의 길이를 거의 일치시켰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또한 피라미드의 밑면을 이루는 사각형은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오차로 네 각이 모두 90°다.
고대 이집트인은 작도로 직각삼각형만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작도로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을 정확하게 알아내기도 했다. 그들은 해가 뜨는 쪽과 지는 쪽을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정했고, 두 지점을 직선으로 이은 후 그 직선의 수직선을 앞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작도해 북쪽과 남쪽을 정했다. 이로써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이 서로 수직이 되게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기하학을 알지 못했다면 그렇게 정밀한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집트인들의 놀라운 수학 실력은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도구가 됐고,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 거대한 피라미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글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 , 칼럼 제공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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