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
공기는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 몸 안의 공간이 넓어지면 기압이 낮아지는데, 이때 외부의 공기가 몸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흡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몸 내부가 압력이 낮아져 공기가 빨려 들어오는 방식의 호흡을 음압(陰壓) 호흡이라고 한다. 요즘 메르스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음압병상도 마찬가지의 원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음압병상이란 인위적으로 병실 안쪽의 기압을 낮춘 방으로, 문을 여닫을 때 공기는 병실 안쪽으로만 들어가고 밖으로는 나오지 않아서 바이러스나 세균이 나오지 않게 만든 것이다.
어쨌든 사람이 숨을 쉬기 위해서는 몸 내부에 음압을 걸어 공기를 빨아들여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되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예를 들면,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진 경우처럼 말이다. 이런 환자들이 제대로 숨을 쉬기 위해서는 음압병상처럼 몸 내부에 인위적으로 음압을 걸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IRON LUNG, 즉 철폐다. 철폐란 커다란 드럼통같이 생겼는데, 환자의 몸을 이 안에 집어넣고 목만 밖으로 내놓는 형태다. 목 주변에 공기가 새지 않도록 꼼꼼히 봉하고 철폐 안쪽의 공기를 빼서 압력을 낮춘다. 내부에 들어간 환자의 몸에도 음압이 걸려 굳이 갈비뼈를 움직이지 않아도 주변 공기가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숨 쉬는 것을 도와준다. 철폐는 사람이 숨을 쉬는 방식을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몸 전체가 통 안에 들어가 있는 형태라 보편화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숨을 쉬지 못 할 뿐만 아니라, 폐의 기능 자체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을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에크모다.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화장치)란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란 말 그대로 ‘몸 밖에서 막을 통해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다. 즉, 에크모는 환자의 혈액 속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주입해 몸속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장치로, 폐포가 하는 일을 대신하는 인공 폐인 것이다.
에크모의 장점으로 첫째는 폐가 망가져 숨을 쉴 수 없는 사람에게 폐의 역할을 보조해준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존의 인공호흡기가 기관지에 직접 구멍을 뚫어야 했던 것에 비해 혈관과 연결되므로 구멍을 뚫을 필요가 없어 환자의 몸에 손상을 덜 준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에크모가 혈액을 직접 순환시키기 때문에 급성 심근경색과 같은 심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 환자들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과 함께 단점도 있다. 에크모의 경우, 전신의 피를 외부의 기계에 연결하기 때문에 혈액은 지속적으로 외부로 노출되고, 몸 밖으로 노출된 피는 쉽게 굳기 때문에 혈전이 생겨 혈관이 막힐 위험이 매우 높다. 따라서 에크모를 사용할 때는 혈전이 생기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혈액응고억제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출혈이 일어나기 쉽고 지혈이 잘 되지 않는 등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야말로 에크모는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환자를 이승에 붙잡아 두는 마지막이자 가녀린 동아줄인 셈이다.
에크모가 적용되는 분야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인공태반이다. 양수, 즉 물속에 잠겨서 자라는 태아는 태어날 때까지 숨을 쉬지 않는다. 대신 태반과 탯줄을 통해 엄마에게 영양분과 산소를 받는다. 태아 입장에서 본다면, 태반은 태아의 몸 밖에 존재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생물학적 에크모라 할 수 있다. 태반은 태아와 모체를 갈라주는 역할을 하며, 엄마의 혈액이 아기에게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태반에서 걸러져 태아에게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만이 전달된다. 태아의 혈액도 엄마의 혈관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태반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노폐물만을 전달한다. 마치 에크모처럼 말이다. 따라서 에크모의 기본 원리를 태아의 상태에 맞게 변형할 수 있다면, 너무 일찍 태어나 자가 호흡이 힘든 아기들을 살릴 수 있는 인공태반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칼럼 제공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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